堂本剛と頭のなか 인터뷰 [3]

LoveKinki 2010. 2. 9. 20:55

about LIFE
CHAPTER 7 라이프 편


새롭게 다듬은 롱 인터뷰
제 2탄은 「라이프 편」으로서
도모토 쯔요시 "삶의 방식"의 핵심으로 파고든다.
평소에 생각하는 것, 일본에 대해 지닌 생각,
이상적인 사회의 존재 방법등이 가득 찬 "선언문"으로써
차분히 정독해주시길 바란다

 

 


30세, 지금부터.
"제로"의 자신에게 솔직하게

 

 

 

마침내 서른이 됩니다. 앞으로는 나는 이렇게 하고 싶다, 나는 이러하다 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말하고 싶어요. 저를 숫자에 비유하자면, 나라에서 도쿄로 와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는 "제로"로 살아왔어요. 거기에서 일로 관련된 분들로부터 「2가 되주었으면 한다」던지 「저희는 5로 부탁합니다」라거나 「10 같은 것도, 쟈니즈같지 않아서 좋잖아?」라는, "제로"에 숫자를 더해가는 듯한 제안을 받는 경우가 많았죠.
지금까지 그러한 주문에 가능한 응해왔지만 문득 깨달은 게, 저에 대한 세간적인 이미지는 "제로"가 아니게 된 것 같아요. 혹시 받게 된 리퀘스트에 지나치게 응했던 건지도 모른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을 바꾸면 앞으로 "나는 기본적으로는 제로다"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나가고 싶어요. 그렇다는 건 결국은 예전부터의 저를 유지해나간다는 것이기도 하네요. 사생활에서도 적극적으로 밖을 돌아다니는 타입의 인간이 아니고 친구도 그렇게 많지 않아요.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왔으니까.


지금까지는 태풍의 눈에 있는 듯한 심경이었습니다. 주위에서는 여러가지 것들이 마구 날아다니지만 중심 부분은 변함없이 지극히 조용한. 그래서 제가 실은 "제로"라는 점을 말하기 시작하니까, 태풍의 눈에 들어오자 뚝 바람이 멈춰서 놀라는 것과 좀 비슷하게 「의외로 성실한 생각을 하고 계시네요」라던지 「의외로 조용하신 분이네요」라는 말을 듣는 것과 연결되겠죠. 그렇지만, 슬슬 그런 저를 솔직하게 드러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은 그렇답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을 진실하게 전해봐도 좋을 적기일까나, 하고. 서른살을 맞이할 즈음에 그런 심경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젊을 때 이런저런 걸 해두는 편이 좋다든지 다양한 리퀘스트에 응하는 것이야말로 프로패셔널한 자세라는 식으로 생각했었어요. 애송이가 무슨 말을 하든 「과연 그렇군요」라고는 말해주지 않으니까요. 제가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는, 지금까지의 일하는 현장에선 거의 반영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답답한 듯 하기도 하고, 반면 즐겁기도 해서 그럼 뭐 괜찮을까 라는 느낌으로 살아왔어요.


하지만, 이제 서른이니까요. 서른을 넘어 살아가는 이 사람 · 도모토 쯔요시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중요해지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단 한번인 인생을 살아가는 속에서의 여러가지 일……, 어머니가 낳아주신 것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과거를 뒤돌아보며 감사하며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미래를 상상하고 그리하여 감사했던 과거와 상상했던 미래를 잇기 위한 노력을 지금, 확실하게 겹쳐나가는……. 그러한 것을 생각하는 커다란 포인트로써 서른이라는 연령이 있는 거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백과 흑의 세계관은 무너뜨리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예전부터 알게 된 뒤 얼마쯤 지나면 「60세 정도의 사람과 이야기하는 기분이 든다」던지 「스님 같으시네요」라는 얘길 들을 정도라서(웃음), 인생은 단 한번뿐이라던가 생명이란 이러이러한 것이다란 걸, 실은 전 계속 생각해왔어요. 하지만 그런 얘기를, 이를테면 18세쯤에 인터뷰 장소에서 했을 때 역시 경험도 부족하니까 설득력이 없죠. 「무슨 얘길 하는 거야 이 녀석은?」라는 느낌으로 귀기울여 주지 않았어요. 「좀더 아이돌다운 얘길 해주시는 편이 기쁜데요」라고(웃음). 진실한 저는, 뭐 말이 심할지도 모르지만 은폐됐던 거죠.

 

 그래서 아까 말했던 "제로"는 말을 바꾸면 "흰색"이 되려나. 주위에서 생각하는 만큼, 저는 그다지 색깔이 없어요. "백"과 "흑"이라는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죠. 물론 "백"과 "흑"이라는 걸 두드러지게 하는 의미에서 사이키델릭함이나 기발함은 필요하다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원래의 "백"이나 원래의 "흑"에 색을 더해지는 건 역시 괴로워요. 백은 백, 흑은 흑. 저 자신은 그 외의 여분의 것은 필요없어요. 그래서 배경에 관해 여러분이 이것저것 생각하여 즐겨 주시는 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느낌으로, 앞으로는 하는 일이 이것저것 바뀌어가면 좋겠습니다.
이제껏 제게 이어진 인연, 쌓아올린 애정, 반성해야만 하는 실수……. 서른이라는 나이를 맞이함에 있어, 그러한 여러가지 일이 딱 이렇게, 맞아들어가는 실감이 있어요.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었지만 제가 지금 이러한 것을 상상하며 이러한 걸 생각하며, 여기를 살아가고 있구나, 이걸로 괜찮은 거구나, 라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만난 세상사를 일종의 자신감으로 바꿀 수 있었기에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세간의 상像과 다른 갭이 "힘든" 적도 있었다

 

세간이 생각하는 "도모토 쯔요시"와 제가 생각하는 제 자신의 사이에는, 물론 갭이 있으며 그것이 괴로웠던 적도 많이 있어요. 숫자로 말하자면 "제로"와 "100" 정도의 간격.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짬이 나면 자주 나라로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나라에 가면 제로로 돌아올 수 있고 제로인 채로도 호흡이 가능했으니까.
도쿄에서는 엔진 풀 가동으로 "100"까지 가야만 하는 날이 많아요. 실제로는 그렇게 화려한 성격이 아니라서 가슴 속에서만 위화감이 부글부글 꿈틀거릴 때도 있었습니다. 「원래는 이런데!」하고 비명이 되지 않는 비명같은 게 줄곧 있어서 괴롭기도 했고. 하지만 그건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본디부터 그런 종류의 것이니까요. 좋든 나쁘든 제가 해온 일의 결과니까 「뭐, 힘든 일도 있지만 해야만 하겠지」라고 마음을 다잡기도 합니다.
자주 말하듯, 아주 힘들 때에 구해준 게 음악이었는지라 지금도 음악은 떼어놓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만 동시에 바로 손 놓는 일이 가능한 인간이기도 해요. 제가 하기 나름으로 어디든지 갈 수 있고, 하기 나름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제로"로도 "100"으로도 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진실한 부분을 더듬어 가면 "제로"라고 하는 사실은 변함없지만요.

 

 

아이돌이 노래하는 것은 현실과 그 앞에 있는 희망

 

"아이돌"을 직업이라 부를 수 있다 치면, 그것이 제 직업의 하나라 한다면,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저희들은 현실을 노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idol=우상이라는 의미에서 사실적인 대상이 아니니 애초부터 모순되어 어렵습니다만, 그렇더라도 현실을 노래함으로써 모두가 현실로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첫걸음을, 확실한 용기를 선물하는 사람만이 진실한 아이돌이 아닐까 싶네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창조는 그러한 마음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꿈만을 노래하며 임시 방편의 쾌락이나 현실도피만 전한다 해도 지금 현실에서 생명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단치 않은 의미가 되리라 생각하니까. 노래가 이어지고 있는 동안에는 현실을 잊을 수 있을 듯한, 얼마간의 착각이 생길지도 몰라요. 하지만 노래가 끝나고 바로 그것과는 관계없는 괴로운 현실이 시작해버리는 것엔, 역시 아무 힘이 될 수 없어요.

 

 그렇다는 건 「그치만 실제로 이러지 않으면 이야기가 되질 않잖아요」라던가 「그런 달콤한 노래만 줄창 부르지 말라고」라고 하시면 돌려줄 말도 없어요.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그리 간단치 않은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니까. 허황된 얘기가 아닌, 현실과 그 앞에 있는 희망을 노래하여 전해나가는 것.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자기 자신이 그 현실을 살며 희망이 되는 것. 그러한 것이 중요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00"으로만 해나가선 안된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100"일 때, 거기에 저의 리얼함은 없으니까. 그래서 제게 있어서의 리얼="제로"의 상태로 모두와 마주봐야만 한다고. 아까부터 얘기하고 있는, 서른을 맞이함에 있어서의 "제로" 선언은 그런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실한 저를 내츄럴하게 전할 수 있게 된다면 제게 있어서 앞으로의 인생은 훨씬 더 편해질 것이고 또 저답게 현실을 살아가며 여러분께 희망을 던질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것을 이어가는 게 허락된다면 시대에 대한 변화(movement)를 일으킬 수 있는 인생이 될지도 모른다, 라는 기대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역시 제 안에서 세간을 향해 무언가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아주 강하게 있어서예요. 전생이 정치가였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웃음). 정치에도 흥미가 있는 편이네요. 지금, 세상에서는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중대한 테마가 되고 있다 생각합니다. 대불황으로 실업자가 늘어, 내일로 목숨을 이어가는 것조차 곤란해지는 것도 그 중 하나이고, 귀를 막고싶어지는 듯한 흉악한 범죄도 많아요. 그 중에서도 수가 늘고 있는 자살에 관해서, 마음이 쓰입니다. 그건 제 자신이 아까도 말했듯이 상당히 괴로운 시기가 있었으니까. 저는 음악을 만났고 팬분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버팀목이 되어주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그 반면에 3년전 즈음부터인가, 자살에 관한 뉴스가 늘기 시작했어요. 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혹여 미디어가 보도를 하기 시작한 것뿐인지도 모르지만요. 하지만 보도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이 나이가 되면 동료나 친구들 중에 결혼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한테 이것저것 묻곤 해요. 이런 시대에 가정을 꾸려, 아이를 키우는 게 어떤 기분이야? 라고. 그러면 역시 모두들 입을 모아 불안하다고 말하죠. 학교에 보내는 것,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돌아오는지, 학교의 등하교길에서 무엇이 있을지, 어디서 무슨 형태로 숨어있을지 상상도 가지않는 위험 요소들……. 큰 불안을 안고서 그래도 키워야만 한다, 왜냐면 그것만이 부모로서의 의무이자 애정이니까. 그러니까 힘내서 하고 있다고. 이것저것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지니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든지 제각각 갈등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런 그들이 말하는 게, 어린 아이들이 뉴스를 보면 눈을 피한다고 해요. 뉴스=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네요.

 

 

전하는 측에서 생각하는 미디어의 역할

 


그래서 미디어에 관하여, 보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케 만들죠. 살인 사건 보도 하나만 봐도 누구누구가 어디서 죽었습니까 같은 추문적인 사실만이 아니라, 좀더 어떤 배경이 있어서 이렇게 되었는가를 알려주길 바래요. 요즘의 보도 대부분은 중요 부분의 핀트를 맞추는 법이 틀린 것처럼 느껴집니다. 보통 보게 되는 뉴스란 게 일어나버린 결과의, 가장 무서운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하는 게 대부분이죠. 그거라면 이 나이가 된 저조차도 뉴스를 보면 침울해지고 심하게 슬퍼집니다. 그런데다 결국은 그 다음의 끔찍한 사건, 또 다음의 훨씬 더 끔찍한 사건으로 흘러갈 뿐이죠? 하지만, 만약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이유가 있다면 좀더 그 뉴스나 배후에 있는 사실에 대하여 마주할 힘도 끓어오르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업계든지 숫자라는 가치관이 있어요. 「이만큼이나 팔리고 있어요」라고 숫자만이 보여지는 부분에서 「굉장하네요-」정도라면 간단히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거기에 그다지 감정은 담겨있지 않지요. 「흐-응」으로 끝나버려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브랜드는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렇게나 팔려서, 원래라면 수치를 높이기 힘든 브랜드인데도 이렇게 수치가 높아졌어요」같은 설명이 있으면 받아들이는 측의 마음도 달라지게 됩니다. 그것이 전하는 쪽, 보도가 취해야할 모습이 아닐까요.


그리고 말이죠, 텔레비전 같은데서 게스트 코멘테이터(역주 : 객원 해설자. 뉴스 진행자의 옆에서 뉴스에 대한 의견이나 추가 설명을 곁들이는 사람) 분이 말하는 이야기는 보고 있는 쪽에게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ㅇㅇ씨」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글쎄요, 이러한 문화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됩니다만」정도로 끝내버리면 약간 아쉽달까요. 요즘엔 "사람은 다 제각각"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너무 많은 듯한 기분이 들어요. 가치관이나 개성같은 게. 「뭐, 사람은 다 제각각이니까요」라고 말해버리면 그만이고 그건 확실히 맞는 소리지만 동시에 도망치는 것 같기도 한 느낌입니다.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은 이래야만 한다」라고 잘라 말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공평하게 보도하는 쪽도, 할말은 해야 할테고. 「좋다고는 생각하지만 이것은 너무 과잉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던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 찬성하기 어렵다」던지. 그 사람 나름의 이유가 포함된 의견을 전해주었으면 해요. 그렇게 되면 왜 이 사람은 좋다고 생각할까, 왜 이 사람은 안된다고 말하는 걸까, 라고 보고 듣는 쪽도 생각하며 거기서부터 사랑이 시작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원한다」에 당혹스러워 하지 않고……

 

당연하지만, 제가 말하는 것들이 100% 맞지도 않고 저라는 인간 역시 100% 올바르지도 않아요. 저는 제 나름으로 「저렇게 하고싶다, 이렇게 있어야 한다」 고 이야기할 뿐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것에 한 가지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모두들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누구든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고 무언가를 원해요. 하지만 현대의 사람들이란 그것이 무언지 생각할 기력도, 힘도 사라져버린 것처럼 생각됩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임시 방편의 상품이 유행하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한물가는 건,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요. 「무언가를 원한다. 하지만, 이게 아냐, 이것도 아냐, 이것 역시 아냐……」.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많아진 건지도 모릅니다.


이만큼 인터넷이 발달한 사회라면, 예컨대 3시간을 때우는 정도야 간단한 일이죠. 아무 생각도 않고 인터넷을 보는 일이야 누구에게든지 자주 있는 일이잖아요. 이를테면 You Tube라던지?
어딘가로 이어지기만 하면 몇분만에 영상이나 정보가 무수히 떠요.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하나 클릭하면 이거 재밌네, 옛날 생각 난다, 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점점 유도되어 정신을 차리면 아주 긴 시간이 흘러있죠. 하지만 그 행위에는 이유가 없어요. 목적도 이유도 없는, 그러나 즐거운 건 틀림이 없어서.
그러한 시간을 보내는 게 젊은 애들을 중심으로 더욱더 늘어나버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요, 매일같이 그런 목적없는 여행을 떠나게 되면 인생의 목적 자체를 잃어버리지 않을까요. 거기다 「목적은 없지만 이걸로도 살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방향으로 정착되고 말 것 같아. 그걸로 끝나면 아직 나은 편이고, 그 여행을 계속하고 있으면 사는 방식의 바리에이션 같은 게 그거야말로 무한으로 늘어나버리고, 그것에 뒤따라 도덕이나 논리도 없어지고 말겠죠. 그렇게 되면 물건을 부수는, 사람을 상처입히는, 자기 자신을 다치게 하는……. 그러한 여러가지 문제도 또한, 늘어가겠죠.


요즘은 뭔가 이렇게, 들떠있는 시대이고 경기도 밑바닥을 치고, 정치 역시 불안정해요. 예를 들어 수상이 자꾸 바뀌는 일은, 도저히 제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고 그래서 그건 그걸로 무언가 방법을 생각하면서 순응해가자고 생각하지만, 우리들이 불안하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죠. 불안해서 견딜 수 없으니까 그것을 메우는 무언가가 필요해요. 하지만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게 귀찮아서 그냥저냥 즐거울 것 같은 걸 먹자, 그냥저냥 즐거울 듯한 장소에 가자, 그냥저냥 즐거울 듯한 걸 사자, 라고. 하지만 말이죠, 어서 빠른 단계에서 모두들 "제로"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100, 70, 80 같이 어깨에 힘을 주고 사는 게 아니라 여러가지 것들을 과감히 손에서 놓아버리면 돼요.


"제로"가 된다는 건 이를테면 방에 공간을 비우는 것과 같아요. 하나의 방에 여러 것들을 너무 많이 넣어버린 게, 사람들의 지금 상태입니다. 뭔가를 사와서는 방안에 넣고, 하지만 아직 만족되지 않아. 「뭘 하고 싶은 거야 난?」하고 한켠으로 의문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무언가 부족한 기분만 심해져서 이번에는 「벽에 걸 그림이라도 사러 갈까」가 되죠. 그래서 사와서 걸어보지만 왠지 아직 딱 들어맞지 않아……. 그렇게 해서 방안은, 필요한지 필요없는지 알 수 없는 것들로 넘치는 거죠. 하지만요, 잠시 멈춰서서 지금의 방을 지그시 바라봤으면 해요.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사실 그렇게 많은 것은 필요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 힘만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거다, 라고. 예를 들자면……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잘 보고 화내고 있는지, 슬퍼하고 있는지 그런 것을 헤아리는 건 누구든지 갖추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것을 흔들림 없이 지닐 수 있다면 그 외에 아무 것도 없다한들 괜찮을 것 같지 않나요?


그리고 물론, 공간 자체를 넓히는 것도 중요하겠네요. 이를테면 해외에서 잠시 살게 되어, 다른 문화를 체험하는 일은 플러스가 된다, 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다른 문화를 더욱더 공부해서 호흡한다면 일본에 돌아올 때는 거기에 두고올 것은 두고 오는. 그래서 일본에 돌아와서 생활해보고, 아직 짐이 무겁다고 생각되면 그것도 버려요. 그래도 자신에게 딱 맞는 것은 여전히 남아있겠죠. 공부한 시점에서는 공간 속에 「플러스」되는 거겠지만 거기까지 정리를 계속 해도 남은 게 있다면 자기 안에서 확실히 정착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되었다면 그건 이미 스페이스 속이 아닌 스페이스 그 자체가 플러스 된……, 즉 넓혀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해서 자신이 갖고있는 공간을 냉정히 응시해보고, 너무 넘치게 된 짐들……, 감정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고 다양하겠지만 그게 정말로 필요한지, 그렇지도 않은지를 빈틈없이 가려내어 불필요한 것은 버려가는 게 지금,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필요없는 것이라면 딱히 이유도 없이 줄줄이 계속 갖고 있는 것보다 경의를 갖고 확실하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편이 좋아요. 왜냐면 왠지, 빈 공간이 없는 방은 역시 힘드니까. 그래서 제 자신은 정리를 함으로써 스페이스를 만들어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해서 스페이스를 가지게 되면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아마, 이를테면 이러한 상황이 되어버린 자신들의 나라에 관해서 자신들 스스로 생각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정치나 사회의 책임으로 떠맡겨버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자신들이 현재를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를 생각할 힘도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놓고 있을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렸으니. 누군가가 시작해야 해, 라는 기분이 드네요.
뭔가 말이죠, 올해는 정말로 정리 정돈을 제대로 해내야만 할 타이밍이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나중에 이상한 일이 되어버릴 것 같은…….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 대해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필드에서 활약하는 인간은 특히나, 그런 제안을 여러 형태로 해나가야만 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앞으로의 날들을 보낼 작정입니다.

 

 

자료출처 : lOve in the KinKi Kids 네이버카페 / shine283님 (사진) 미즈키님(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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